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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연구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문 전문 요약

    최태원-노소영 이혼 사건 항소심 판결 핵심 내용을 이혼전문변호사가 쉽게 요약했습니다.
    오아영 변호사's avatar
    오아영 변호사
    Nov 18, 2025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문 전문 요약
    Contents
    [주 문][이 유]1. 본소 및 반소 각 이혼, 반소 위자료 청구에 대한 판단가. 인정사실나. 판단다. 소결론2. 반소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판단가. 재산형성의 경위 및 과정나. 재산분할의 기준시점다. 분할대상 재산 및 가액라. 원고 적극재산 순번 1번(SK주식회사 주식)에 관한 판단바. 원고적극재산 순번 8번사. 원고 적극재산 순번 9번 (예술품)에 관한 판단카. 원고 적극재산 순번 89 내지 91번(원고의 증여주식에 관한 판단)타. 원고의 SK C&C 주식 매각대금 및 원고 소극재산 순번 1 내지 6번 (유가증권 담보 대출 및 신용대출에 관한)거. 원고 적극재산 순번 내지 번 원고가 부정행위 등과 관련하여 일방적으로 소비 처분한 금원 관련 에 관한 판단더. 재산분할의 비율과 방법러. 소결론3. 결론

    👉 본 글은 서울고등법원 2024. 5. 30. 선고 2023르20051 판결을, 오아영 변호사가 임의로 요약한 것입니다. 따라서 판결 원문과는 차이가 있으며, 원문은 글 하단에 표시한 출처 링크에서 확인해주십시오.

    [주 문]

    1. 이 법원에서 피고(반소원고)가 확장한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 판결 중 반소 위자료 및 재산 분할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한다.

    가. 원고(반소피고)는 피고(반소원고)에게 위자료로 2,000,000,000원 및 그 중,

    1. 1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2. 12. 6.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2. 2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3. 1,700,000,000원에 대하여는 2024. 1. 11.부터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나. 피고(반소원고)의 나머지 반소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다.

    다. 원고(반소피고)는 피고(반소원고)에게 재산분할로 1,380,817,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 원고(반소피고)의 항소와 피고(반소원고)의 나머지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2. 소송총비용은 본소와 반소를 통틀어 그 70%는 원고(반소피고)가, 나머지는 피고(반소원고)가 각 부담한다.

    3. 1. 가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 유]

    1. 본소 및 반소 각 이혼, 반소 위자료 청구에 대한 판단

    가. 인정사실

    1) 혼인 및 초기 혼인생활

    가) 원고와 피고는 1988. 9. 13.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89. 4. 15.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의 부부로서, 슬하에 성년 자녀 3명(최윤정, 최민정, 최인근)을 두었다. 피고는 제13대 대통령 노태우(1988. 2. ~ 1993. 2.재임)의 딸이다.

    나) 원고와 피고는 1988. 9. 13. 한국에서 결혼 후 미국으로 돌아가 유학하고, 1989. 최윤정을 출산하였으며, 1990. 12. 2.경 귀국하였다.

    다) 원고의 모친 박계희는 1997. 6. 18. 심장마비로 사망, 원고 부친 최종현은 폐암 수술 후 1998. 8. 26. 사망하였다. 원고는 1989.경 SK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최종현 사망 이후 1998. 9.경 SK에너지 대표이사 회장에, 2007. 7.경 SK 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 후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피고는 박계희 사망 이후 박계희 운영 워커힐 미술관의 관장직을 맡게 되었고, 2000.경 아트센터 나비로 명칭을 바꾼 후 현재까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 원고의 부정행위 등 갈등 발생

    가) 원고는 2006.경 김희영을 처음 만났고, 피고는 2007. 8.경 미국 보스턴에서 세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뉴욕에서 머물고 있던 원고는 큰딸 최윤정의 생일인 2007. 8. 8. 보스턴 집을 찾아와 이혼을 요구하였다.

    나) 김희영은 미국 뉴저지 법원에 전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 2008. 11. 18. 위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았다.

    다) 원고와 김희영은 늦어도 2009. 초경에는 이미 부정행위를 하는 관계에 있었고, 김희영은 원고와 사이에 2010. 최OO을 출산하였다. 이후 원고는 2016. 최OO에 대하여 인지 신고를 하였다. 원고는 2011. 7.경 홍콩에 있는 호텔에서 김희영과 김희영 부모, 최OO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당시 피고는 원고 디지털 카메라에서 원고, 김희영, 최OO, 김희영의 부모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고, 원고는 ‘어떤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라는 식으로 부정행위와 혼외자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라) 원고는 2009.경 침실을 1층 서재로 옮기게 되면서 2층 침실을 사용하는 피고와 각방 생활을 하였고, 2011. 9. 11. 일방적으로 가출하여 회사, 사옥, 집무실 등에서 숙식하면서 피고와 별거하였다.

    3) 원고의 부정행위 공개 과정 및 그 이후의 경과

    가) 원고는 2013. 11. 24. 구속 상태에서 피고에게 자필 편지를 보냈고, 2014. 1. 7. 자녀들에게도 김희영과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는 자필 편지를 보냈다. 원고가 2015. 8. 14.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이후에도 피고와 별거 상태를 유지하였다.

    나) 원고는 피고의 동의 없이 2015. 12. 29.경 세계일보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고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 이를 언론에 공개하였다. 이후 원고는 2017. 7. 19.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하였으나 조정이 성립하지 않았다.

    다) 원고는 2018. 1. 4.경 상당한 규모의 돈을 출연하여 김희영과 재단법인 티앤씨재단을 설립하고, 김희영은 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원고는 2019. 5. 28. 열린 소셜밸류 커넥트 2019 행사에 김희영과 동반 참석하는 등 김희영과 공개활동을 시작하였고, 위 행사에서 원고는 ‘김희영으로 인하여 원고가 비로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라) 피고는 원고의 이혼조정 신청에 대하여 이혼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오다가, 제1심 소송 진행 중이던 2019. 12. 4.에 이르러 원고를 상대로 이혼, 위자료 및 재산 분할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이후 피고는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이던 2020. 5. 14. 원고 소유 SK 주식에 대하여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한 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하여, 2022. 2. 17. 위 주식 중 350만 주에 대하여 처분금지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나. 판단

    1) 반소 이혼 청구 : 인용 (민법 제840조 제1호 및 제6호)

    2) 반소 위자료 청구 일부 인용 (20억 원)

    3) 본소 이혼 청구 : 기각 (유책배우자의 청구이므로)

    4) 판단근거

    가) 혼인관계의 파탄 인정

    원고와 피고가 이혼을 원하고 있는 점, 원고와 피고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2011. 9 .11.부터 현재까지 장기간 별거하면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는 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상실하여 혼인 생활을 지속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점 등, 혼인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다고 인정된다.

    나) 혼인관계 파탄의 주요 책임은 원고

    원고가 2013. 11. 24. 피고에게 보낸 편지 내용(김희영이 전남편과 혼인관계 유지 중인 상황에서, 원고가 김희영을 이혼시키고 혼외자까지 낳도록 시키는 등의 행위를 계획적으로 실행하였다는 취지)은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 유지, 존속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사정이고, 이는 부부간의 신뢰관계를 크게 훼손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또한 원고는 편지를 별다른 생각 없이 혹은 무심코 작성한 것이 아니라, 피고와 자녀들에게 김희영과 혼외자의 존재에 관하여 어떻게 설명할 지 상당히 고민한 다음, 1차적으로 피고에게 편지를 송부하고, 한달 반 정도 후에 자녀들에게 2차적으로 편지를 송부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원고는 편지에서 자신과 김희영의 관계를 공개하고 김희영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이유 등을 종교적인 신앙 내지 신념 등에 기대어 설명하기도 하였다(기독교 신자인 원고가 위와 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편지를 송부한 것은 그 기재 내용이 진실된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위 편지의 내용은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 편지 내용에 따라 원고는 2008. 6.경 원고의 계획에 따라 김희영이 이혼하였고, 그 이전부터 김희영과 이미 부정행위를 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 원고는 김희영의 이혼에 개입한 바 없고, 2009. 초경부터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명백한 거짓말에 해당한다고 판단.

    👉 오변 해설 : 판결문에는 원고 주장 신빙성을 판단하는 부분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원고 주장이 사실이라면 원고가 옥중에서 피고와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되고, 이러한 명백한 허위 내용이 자녀들에게 전달되도록 사전에 계획하여 이를 실행하였다는 것으로 말이 안된다고 판단.

    다) 혼인파탄에 관한 원고 주장에 대한 판단

    (1) 원고 주장의 요지

    원·피고의 돈과 권력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피고의 우월의식과 자기중심적 행동방식, 피고의 이중적 태도 등으로 인하여 이미 2005.경 내지 2007.경에는 파탄되었으므로, 원고가 혼인파탄 이후 시점인 2009.초경 김희영과 연인관계가 된 것과 혼인관계 파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또한 피고가 2011.경 청와대에 원고와 관련된 수사청탁을 하였기 때문에 원고가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었고, 피고는 2014.경 내지 2015.경 청와대에 원고의 사면을 반대하는 청탁을 하였으며, 2016.경 김희영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 댓글공작을 사주 내지 방조하였다.

    따라서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은 원·피고 모두에게 있고, 설령 주된 책임이 원고에게 있다고 보더라도, 위와 같은 사정 등을 고려하여 본소 이혼청구가 인용되어야 한다(민법 제840조 제3호 및 제6호).

    (2) 구체적 판단

    원고가 2007. 8. 8.경 피고와 자녀들 앞에서 이혼 요구하기 전까지 혼인 파탄에 이를 정도의 갈등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김희영이 2011. 11. 18.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피고에게 보낸 편지, 김희영의 상간 소송 제기 시점인 2008. 6.경 이전부터 원고와 김희영의 부정행위가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 원고는 2013. 9. 11. 집에서 나간 이후에도 자녀들과 녹음 등을 위하여 거의 매일 지속적으로 상의한 점, 피고는 원고 집안의 며느리로서 2017. 12. 원고 고모의 생일, 2018. 5. 원고 작은아버지의 팔순 잔치 등 원고 집안의 행사에도 빠짐 없이 참석한 점,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이혼조정 신청을 한 이후인 2018년 설에도 원고 부모의 차례를 마친 다음 원고와 함께 원고의 큰집으로 가서 시가 친척들에게 세배하고 문안 인사를 한 점, 원고와 피고가 2005.경 이후에도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상당 기간 성경 공부를 함께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부정행위가 있기 전인 2005.경 내지 2007.경 이미 원·피고의 혼인 관계가 파탄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원·피고의 혼인 관계는 원고와 김희영의 부정행위와 혼외자 출산 및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인하여 결국 파탄에 이른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또한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가 원고의 유죄 판결 확정 이후 원고의 수감기간 동안 2015.경 청와대에 원고의 사면을 반대하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피고 측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고가 피고 및 자녀들에게 자신의 부정행위 및 혼외자의 존재를 밝힌 시점보다 현저하게 나중에 발생한 것으로서 오히려 피고에게 성실하였던 원·피고 혼인관계 파탄에 있어 원고의 부정행위 등보다 더 주요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기초한 원고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3) 반소 위자료 지급 의무 및 액수

    원고는 혼인관계 파탄에 따라 피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한편 유책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수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도, 이 사건 변론에 드러난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위자료 액수는 20억 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가) 원고는 혼인 기간 도중 김희영과 부정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김희영과 사이에 혼외자를 낳은 이후 일방적으로 가출하여 현재까지 십 수 년 이상 사실혼과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 피고는 2009. 5. 8.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근치적 절제를 받은 후 상당 기간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원고는 그 시기에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하고 혼외자까지 낳았으므로, 피고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 원고는 피고 및 자녀들에게 김희영의 이혼 과정 관여 등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말을 하였거나, 혹은 이 사건 소송 과정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단7789 사건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의도적·계획적으로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바, 위와 같은 원고의 태도는 피고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라) 원고는 일방적으로 세계일보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고, 피고와 혼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언론에 공개 후, 혼인 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희영과 함께 재단을 설립하였고, 현재까지 김희영과 공개적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마치 김희영이 배우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고는 상당한 기간 동안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이를 공식화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측면에서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원고는 최소한 십 수 년 동안 위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피고의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하였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원고의 고의적인 유책행위로 인하여 피고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배상 의무를 져야 한다.

    (마) 원고는 자신의 지속적인 부정행위에 대해 피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혼 조정신청 이후 계속하여 ‘피고의 자기중심적 행동방식, 이중적 태도 등으로 인하여 혼인관계는 이미 파탄되었으므로, 원고의 부정행위가 혼인 관계 파탄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피고가 원고에 대한 일련의 보복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 부부간 부양 의무는 혼인 관계의 본질적 의무로서 부양의무자는 부양의무자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여 부부 공동생활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혼인이 사실상 파탄 되어 부부가 별거 하면서 서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혼을 명한 판결이 확정 등으로 법률상 혼인관계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는 부부간 부양 의무가 소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3. 3. 24. 선고 2003므1436 판결 등). 그리고 부부간 부양의무에 따른 부양의 정도는 부양을 청구하는 당사자의 사정, 부양의무자의 사정, 부양이 필요하게 된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정하여야 하므로, 결국 부양 정도는 당사자 쌍방의 재산 상태와 수입액, 생활 정도 및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부양이 필요한 정도, 그에 따른 부양 의무 이행 정도, 혼인생활 파탄의 경위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므9693 판결).

    원고는 이 사건 이혼 조정 신청 이후에 상당한 기간 동안 피고에 대하여 매월 현금 2,000만 원, 신용카드 대금 매월 약 5,000만 원, 빌라 임차료로 매월 약 6,000만 원 등 경제적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고는 2019. 2. 20. 카드 사용을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피고 거주지를 관리하던 직원 및 운전기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으며, 2023. 3. 31.자 원고 빌라 임대차 계약을 종료시킨 다음, 2023. 4. 1. 이후에는 피고로 하여금 빌라에 관하여 직접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임차료를 지급하도록 하였으며, 매월 현금 2,000만 원의 지급도 중단하였다.

    그런데 항소심 판결 재산분할명세표에 의한 원고 순재산은 3조 9,883억 원에 달하고, 2011. 9. 11. 가출 이후 현재까지 김희영 등에 대한 생활비 등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원고가 ‘피고의 생활을 배우자인 원고의 생활과 같은 정도로 보장하는 방법’으로 피고에 대하여 부부간 부양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사) 피고는 원고 모친 박계희가 사망한 이후 박계희가 운영하던 미술관의 관장직을 이어받아 아트센터 나비로 명칭을 바꾼 후 현재까지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부터 SK사옥 빌딩을 전차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SK그룹으로부터 운영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원고가 이 사건 이혼 조정 신청 이후 SK이노베이션은 2019. 9. 26.부터 아트센터 나비와 전대차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하고 퇴거할 것을 요구하였고,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아트센터 나비의 주요 교부금 제공을 폐지하였다. 원고가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점을 종합하여 보면 위와 같은 사정들은 원·피고의 혼인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원고의 모친으로부터 승계한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원고가 이 사건 이혼 소송을 계속 중인 2018. 1. 4.경 상당한 규모의 돈을 출연하여 김희영과 함께 재단을 설립한 다음, 김희영이 E안네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이러한 원고의 태도 역시 피고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 한편, 원고는 2011. 9. 11. 피고와 별거한 이후 김희영과의 생활비, 최○○의 학비, 재단 출연금, 김희영 가족에 대한 대여금 등 김희영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나 김희영과 관련하여 합계 약 219억 원을 지출하였고, 그 외에도 원고 명의의 은행 계좌를 이용하여 김희영 관련 상당한 금원을 소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와 같은 원고의 경제 수준, 소비 성향, 부부공동재산의 유출 등을 이 사건 소송의 반소 재산분할 부분에서는 물론, 혼인 관계의 파탄으로 피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도 고려하여야 한다.

    다. 소결론

    1) 반소에 의하여,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2) 원고는 피고에게 위자료로 2,000,000,000원 및 그 중

    • 1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반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 2022. 12. 6.까지(1심 판결 선고일)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 1심에서 청구/1심에서 인정된 금액

    • 200,000,000원에 대하여 2019. 12. 14.부터 2024. 5. 30.까지(항소심 판결 선고일)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 1심에서 청구/항소심에서 인정된 금액

    • 1,700,000,000원에 대하여는 2024. 1. 11.부터(반소 항소취지 및 항소이유 법정신청서 부본 송달 다음날) 2024. 5. 30.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 항소심에서 청구 확장/항소심에서 인정된 금액

    3) 원고의 본소 이혼 청구와 피고의 나머지 반소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한다.

    2. 반소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재산형성의 경위 및 과정

    1) 원·피고의 재산형성

    가) 원고는 피고와 혼인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재산이 많지는 않았으나, 1989. 5. 1.경 SK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 2012. 2. SK하이닉스의 대표이사로 각 재직하면서까지 상당한 규모의 보수를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하였다.

    나) 피고는 원고와 마찬가지로 혼인 당시 보유하고 있던 재산이 많지는 않았으나, 혼인 기간 중 원고로부터 받은 생활비, 아르바이트 내지 보너스 등의 수입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고 명의의 주식, 예금, 부동산 등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 원·피고는 혼인 초기 재산을 구분하지 않고,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라) 최종현이 1989. 11. 21.부터 1994. 11. 21.까지 원고에게 수 차례 현금 2,901,361,200원을 증여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 원고는 과세 관청에 증여세 신고를 하였고, 최종현은 그 외에도 1994년 내지 1995년경 월드빌라트 매수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월드빌라트의 매매금액이 10억 3,000만 원인지 14억 원인지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있다).

    2) SK그룹의 변천과 원·피고의 재산형성 과정

    가) SK그룹의 형성과 변천 및 이동통신 사업 진출

    (1) SK그룹은 최종건이 1953년 창업한 선경직물을 기초로 형성된 기업집단으로, 1973년 최종건이 사망하자 동생인 최종현이 그룹 총수 지위를 승계하였고, 최종현은 1980년에는 대한석유공사를, 1994년에는 당시 제1이동통신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그룹의 사세를 확장하였다.

    (2) 노태우 정부는 1991년경부터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추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1991. 8. 10. 노태우 정부 발의 법률안을 토대로 특정통신사업의 수허가권자 자격을 제한하고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예정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이 개정되었다. 이는 노태우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 선경그룹이 1994년 제1 이동통신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할 당시까지 그대로 존속되었다. 1980. 11.경 선경그룹이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 이후 1982. 7.경 사명을 ‘주식회사 유공’으로 바꾸었고, 유공은 선경그룹의 대표회사로서 그룹 내 투자 또는 계열사 증자 등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많은 자금을 마련하여 한국이동통신 최대주주가 되었다.

    (3)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가시화될 무렵, 위 사업의 수주를 위해 1991. 4. 13. 선경텔레콤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세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통하여 주식회사 유공이 70억 원(70만 주)을, 선경건설 주식회사가 30억 원(30만 주)을 각 출자하였다. 선경텔레콤 주식회사는 1992. 5. 30.경 대한텔레콤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4) 대한텔레콤은 노태우의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2. 8. 20.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당시 대통령과의 관계 등으로 논란이 일자 선정된 지 일주일 만에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였다.

    (5) 선경그룹은 유공, 흥국상사, 선경인더스트리 등 계열사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4. 1.경 공개 입찰절차에서 한국이동통신(제1이동통신) 주식 23%를 인수하였고, 1994. 7. 7. 한국이동통신의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선경그룹 임원들을 이사로 선임하게 하면서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한국이동통신은 1997. 3.경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6) 유공은 1997. 10. 1. SK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나) 최종현이 사망하기 전 원고의 대한텔레콤 주식 인수 및 대한텔레콤의 변천 등

    (1) 원고는 선경그룹이 1994. 1.경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3%를 인수하고, 1994. 7.경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인 1994. 11. 21. 유공으로부터 대한텔레콤 주식 70만 주를 인수하였고, 이에 따라 매각 대금은 1995. 7.경 선경건설로부터 대한텔레콤 주식 30만 주를 인수하였다.

    (2) 원고는 1995. 12. 30.경부터 대한텔레콤에서 이사로 재직하였다.

    (3) 대한텔레콤이 SK그룹 계열사인 SK텔레콤과의 거래 등을 통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자, 원고와 김준일은 위 논란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1998. 5. 13. 대한텔레콤 주식 30만 주(원고 21만 주, 김준일 9만 주)를 SK텔레콤에 무상증여하였고, 그 결과 1998. 5.경 대한텔레콤의 지분 구조는 원고 49%, SK텔레콤 30%, 김준일 21%가 되었다. 한편, 김준일은 2000년경 원고의 여동생 최기원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부유하고 있던 SK C&C 주식 210,000주(대한텔레콤은 1998. 12. 1. 사명을 SK C&C로 변경하였다) 중 50%인 105,000주를 SK에너지판매에 주당 173,000원, 합계 18,165,000,000원에 매각하여 그 대금을 자신이 취득하였고, 나머지 50% 105,000주는 최기원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이전하였다.

    (4) 한편, 유공의 정보통신사업부에서 독립하여 1990. 10.경 설립된 회사인 주식회사 아이씨앤씨는 1996. 5.경~1996. 6.경 12개 SK그룹사의 전산조직과 인력들을 모두 통합하고, 1996. 7. 9. SK컴퓨터통신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SK컴퓨터통신은 1996. 12. 31. 계열사인 선경정보시스템 주식회사를 흡수합병하였고, 이후 SK그룹 내 전산 시스템 통합구축 및 운용·유지 업무 등을 전담하였다.

    (5) 대한텔레콤은 1998. 9.경 SK(구 유공)로부터 SK컴퓨터통신 주식 100%를 인수하였고, 1998. 12. 1. SK컴퓨터통신을 흡수합병하면서 사명을 SK C&C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다) 최종현의 사망 이후 원고의 SK그룹 경영권 승계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등

    (1)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하자, 당시 SK그룹 경영에 참여 중이던 원고와 원고의 사촌 형제 등 5인은 1998. 8. 28.자 합의서를 작성한 다음 원고를 SK그룹 및 Family 대표로 추대하였고, 원고의 동생들인 최재원, 최기원은 상속재산협의분할을 통하여 최종현이 보유하고 있던 SK그룹 계열사들의 주식 대부분을 원고가 상속받을 수 있게 하였다. 원고는 1998. 9. 1. 최종현의 뒤를 이어 SK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다.

    (2) 한편, 최종현은 과거 SK그룹 회장 시절 경영실적, 재무구조가 우량하지 못한 일부 계열사의 은행 차입금에 대하여 그룹 총수로서 개인적으로 연대보증을 하였는데, 원고가 SK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후 원고 역시 채권자 은행들의 요구에 따라 총 6조 8,000억 원의 해당 계열사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하였다.

    (3) SK C&C는 원고가 SK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이후인 1998. 12. 8. 당시 SK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던 SK가 발행하는 1,4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취득하였고, 2000. 12. 12. 위 전환사채의 전환권을 행사하여 SK(구 유공) 주식 11,054,958주(지분율 8.57%)를 취득함으로써 SK(구 유공)의 2대 주주가 되었다.

    (4) SK C&C는 2001년 당시 SK의 1대 주주이던 SK글로벌(구 SK상사, 이후 SK네트웍스로 상호변경)이 매각하는 SK의 주식 일부를 인수함으로써, 2001. 1. 29. SK의 최대주주(지분율 10.83%) 지위에 올랐다.

    (5) SK는 2007. 7.경 SK주식회사(이하 ‘구 SK’라 한다)를 존속회사로, SK에너지 주식회사(현 SK이노베이션 주식회사)를 신설회사로 하는 인적분할을 단행하였고, 구 SK는 SK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SK C&C는 위 인적분할 이후 2009. 1.경까지 구 SK 주식을 구 SK와 현물교환하거나 추가로 매수하는 방법으로 구 SK 주식을 취득하여 구 SK의 최대주주(지분율 31.82%) 지위에 오름과 동시에 지주회사인 구 SK를 지배하게 되었다. ) 이로써 SK C&C가 구 SK를 지배하고, 구 SK가 SK에너지 주식회사(현 SK이노베이션 주식회사), SK텔레콤 주식회사, SK네트웍스 주식회사, SKC 주식회사, SK E&S 주식회사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그룹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6) SK C&C는 2015. 8. 1. 구 SK를 흡수합병한 후 사명을 SK주식회사로 변경함으로써 SK주식회사가 SK그룹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현재의 지주회사 체제로 변화하였다.

    나. 재산분할의 기준시점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 있어 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과 그 액수는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하여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대법원 2000. 5. 2.자 2000스13 결정 참조),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변론종결일 사이에 생긴 재산관계의 변동이 부부 중 일방에 의한 후발적 사정에 의한 것으로서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관계와 무관하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변동된 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므1455, 1462 판결 참조).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이 사건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재산분할의 대상 및 가액을 정하되, 금전과 같이 소비나 은닉이 용이하고 기준시점을 달리할 경우 중복산입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 사건 반소 제기일인 2019. 12. 4.을 기준으로, 당시 보유하고 있던 금원이 부부공동생활에 사용되었다는 점에 관한 당사자의 명확한 입증이 없는 한 이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로 하고, 원고와 피고가 각자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 역시 제출된 자료 중 2019. 12. 4.에 가장 가까운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기로 한다.

    ① 원고와 피고는 2011. 9. 11. 원고의 일방적인 가출로 인하여 별거가 시작되었지만, ② 원고의 일방적 가출 이후에도 원고와 피고가 자녀 문제나 친족 관계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상의를 하였던 점, ③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이혼 소송 제기 시까지 이혼 의사가 없음을 피력하면서 원고의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반소 제기 전 원고와 피고의 혼인 관계를 두고 그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어 원고와 피고 각자의 독립적인 생활관계가 완전히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기초한 원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다. 분할대상 재산 및 가액

    1) 관련 법리

    가) 민법 제839조의2에 규정된 재산분할제도는 혼인 중에 취득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민법이 혼인 중 부부의 어느 일방이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의 특유재산으로 하는 부부별산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완하여, 이혼을 할 때는 그 재산의 명의와 상관없이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기여한 정도 등 실질에 따라 각자의 몫을 분할하여 귀속시키고자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부부가 이혼할 때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루었거나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유형·무형의 자원에 기초한 재산이라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나) 부부 일방의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나 특유재산일지라도 다른 일방이 적극적으로 그 특유재산의 유지에 협력하여 그 감소를 방지하였거나 그 증식에 협력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 특유재산으로 형성된 자금을 기초로 구입한 재산이더라도 이를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 상대방의 가사노동 등에 의한 내조가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것이라면 역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2) 구체적 판단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 및 그 가액은 별지1 분할재산명세표 기재와 같고, 당사자들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아래에서 별도로 판단하는 외에는 별지1 분할재산명세표의 ‘인정근거’란, 별지2 불인정재산명세표의 ‘불인정이유’란의 각 기재와 같으며, 그밖에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 부분 중 별지1 분할재산명세표 및 별지2 불인정재산명세표의 기재에 반하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은 모두 배척한다.

    라. 원고 적극재산 순번 1번(SK주식회사 주식)에 관한 판단

    1)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1) 선경그룹 선대회장 최종현은 1994. 5.이전 원고에게 현금 2억 8,000만원을 증여하여, 위 증여금을 이용하여 원고 명의로 대한텔레콤 주식을 매수하도록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중략) 최종현이 원고에게 증여한 2억 8,000만 원과 원고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대금 2억 8,000만 원은 서로 동일성이 인정된다. 나아가 최종현으로부터 증여받은 2억 8,000만 원으로 취득한 위 대한텔레콤 주식이 이후 인수, 합병, 액면분할, 증여, 매각 등을 거치면서 현재 이 사건 SK주식이 되었으므로, 이 사건 SK주식은 원고의 실질적인 특유재산에 해당한다.

    (2) 위와 같이 원고가 1994. 11. 21. 취득한 대한텔레콤 주식은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 사건 SK주식과 동일한 것이고, 선대회장인 최종현은 1994년 당시에 대한 텔레콤을 선경그룹 정보통신 신사업의 양대 축 중 하나로 성장시킬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추진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 SK주식에는 원고가 최종현으로부터 상속받은 SK그룹에 대한 경영권이 화체되어 있고, 원고가 SK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수단이 당초의 상속주식에서 이 사건 SK주식으로 변환되었을 뿐이므로, 이 사건 SK주식은 실질적인 상속재산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이 사건 SK주식은 SK그룹의 경영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을 뿐 가정경제공동체와는 뚜렷하게 구분되어 관리 및 운영되었다.

    (3)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는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하기 전 SK C&C를 그룹 핵심 계열사로 만들기 위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다음, 최종현 사후 경영권을 승계·상속한 원고의 경영활동 이외에 수많은 전·현직 임직원이 회사의 경영 전반과 개별 업무를 분담하여 수행한 성과이다. 또한 그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한 점과 특히 SK C&C가 영위하였던 이동통신 관련 산업 및 IT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확장한 점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원고가 SK그룹의 경영자로서 SK그룹 내 회사의 수익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원고의 경영자로서의 역할과 기여에 대하여는 원고가 대표이사로서의 보수와 상여를 받음으로써 보상받았다. 따라서 ‘원고의 보수 및 상여금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재산’은 ‘원고의 경영활동에 따른 이익’이고, 여기에는 피고도 기여한 바 있으므로, 이는 부부공동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부부공동재산으로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원고가 SK주식회사의 대주주로서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가 증가하는 이익을 얻거나, 이 사건 SK주식을 보유함에 따라 배당을 받는 것’은 ‘SK주식회사의 주주라면 누구나 동일하게 누리는 이익’일 뿐이고, 이러한 이익에 원고의 경영 활동을 통한 기여가 있다거나, 피고의 기여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형성·유지·관리와 관련된 SK그룹의 성장에 있어 피고 측의 기여는 존재하지 않는다.

    (4) 다른 측면에서, 원고는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승계상속형’ 사업가로서, 본인이 창업하여 기업을 일으킨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완전히 다른 사업가 유형에 속한다. 그런데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경우, 최초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창업의 과정에서부터 부부 쌍방의 노력이 투입되는 등 혼인생활 중에 기업의 가치를 증가시키는데 상대방 배우자의 적극적인 기여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그와 관련하여 취득한 재산은 그 소유 명의에도 불구하고 실질은 부부공동재산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보유한 경영권 관련 주식은 부부가 혼인 중에 함께 노력하여 형성한 재산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가치 증가에 대한 보상 여부와 무관하게 그 가치 증가분 또한 당연히 부부공동재산에 해당한다. 그러나 원고와 같은 ‘승계상속형’ 사업가의 경우, 선대사업가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해당 기업에 대한 주식과 경영권에 국한하여 보면 그 주식 등 자체가 상속재산에 해당하여 특유재산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이 부분에 대하여는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도를 인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승계상속형’ 사업가의 경우 상속된 기업자산의 유지와 증식에 대하여 상대방 배우자가 추가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당 기업에 대한 주식 등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다.

    (5) 따라서 원고의 특유재산인 이 사건 SK주식의 형성·유지·관리에 피고 측이 기여한 바 없으므로, 이 사건 SK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나) 피고의 주장 요지

    (1) 이 사건 SK주식과 관련하여 원고의 대한텔레콤 주식취득 자금과 최종현으로부터 증여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금 사이에 동일성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원·피고의 혼인 초기 피고 부모로부터 다양한 지원이 있었으며, 원고 부모와 피고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현금은 혼화되어 원·피고의 부부공동재산으로 함께 관리·사용되었으므로, 원고의 대한텔레콤 주식취득은 최종현의 증여금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여기에 아래 (2)내지 (4)항의 사정까지 함께 고려하는 경우, 이 사건 SK주식은 원고가 혼인기간 중 부부공동재산에 기초하여 취득한 주식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이 사건 SK주식이나 그 토대가 된 대한텔레콤, SK C&C 주식의 가치 증가 등에는 원고의 경영활동 및 이에 대한 피고 측의 기여가 있었다.

    (2) 노태우는 1991년경 최종현에게 300억 원 상당의 금전적 지원을 하였고, 이에 대한 증빙으로 최종현은 선경건설 발행의 액면금 50억 원, 발행일 1992. 12. 16., 지급기일 및 수취인 공란으로 된 약속어음 6장(총 가액 300억 원)을 노태우 측에 교부하였다(노태우 측이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근까지 위 약속어음 6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2012년경 그중 2장을 SK그룹에 교부하고 나머지 4장을 노태우의 배우자 김옥숙이 보관하고 있다). 최종현에게 지원된 위 300억 원 중 상당 부분은 최종현의 1991년 내지 1992년경 태평양증권 인수자금, 이동통신사업 진출 등을 비롯한 최종현 내지 SK그룹의 사업자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원고에게 상속되거나 원고와 피고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등 원·피고 부부공동재산의 토대가 되었다.

    (3) 노태우의 최종현에 대한 유형적인 경제적 지원 외에도, 노태우는 최종현 등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등 SK그룹의 사세 확장에도 기여하였으며, 대통령 재직 당시 해외 순방이나 외국 정상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최종현과 원고를 동석하도록 하여 SK그룹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에도 기여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종현과 원고가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에 대한 ‘배경’이 되었다.

    (4) 피고는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고, 원고 모친 박계희가 사망한 이후 그 뒤를 이어 워커힐 미술관,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으로 재직하였는데, 이와 같은 피고의 내조와 조력으로 원고는 대외적인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는 혼인기간 도중 원고가 마땅히 수행하였어야 할 다양한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였다. 이처럼 피고는 원고의 기회비용을 보전하였다는 측면에서도 이 사건 SK주식 등 원고의 재산형성에 기여하였다.

    (5) 따라서 피고 측은 위와 같이 이 사건 SK주식의 형성·유지·관리에 기여하였으므로, 이 사건 SK주식은 분할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중략)

    3) 최종현이 1991년 내지 1992년경 노태우 측에 교부한 선경건설 발행 50억 원의 약속어음 6장의 교부 경위 등

    앞서 인정한 사실에다가 앞서 든 증거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내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최종현이 1991년 내지 1992년경 노태우 측에 교부한 ‘선경건설발행 1992. 12. 16.자 어음금액 50억 원의 약속어음 6장은 노태우 측이 1991년경 최종현에게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한 다음(정확한 액수와 금전 지급 시점 등을 확인할 수 없지만, 원고가 그 진정성립 및 발행사실 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이 사건 약속어음의 액면액에 비추어볼 때, 그 규모가 300억 원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 증빙의 의미로 교부받은 것이고, 위와 같이 노태우 측으로부터 최종현 측에게 유입된 자금은 최종현이 종래 보유하던 개인 자금과 혼화되어 최종현이 본래 개인 자금과 함께 이에 관한 사용·수익·처분권한을 행사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가) 전제되는 사실관계

    (1) 최종현이 1991년 내지 1992년경 노태우 측에게 이 사건 약속어음을 교부하였고, 이를 피고 측이 2012년까지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관하여는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여 진술하고 있다[한편,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에는 ‘(이 사건 약속어음의 교부 경위에 대해서는 피고의 주장과 차이가 있지만) 최동현의 지시에 따라 손길승 자신이 직접 선경건설 사장에게 요청하여 이 사건 약속어음을 발행받아 이를 청와대에 전달하였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다].

    (2) 피고는 현재 이 사건 약속어음 중 4장만을 보관하고 있다. 피고는 그 경위에 관하여, “김옥숙이 2012년경 노태우의 추징금 2,628억 원 중 일부 미납된 부분을 완납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당시 SK그룹에 근무 중이던 박00 고문에게 위 약속어음 중 2장을 주고 SK그룹에서 100억 원 정도를 마련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으나, 박00 고문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하였고, 김옥숙은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여 미납된 추징금을 모두 국가에 납부하였기 때문이다.”라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3) 김옥숙은 현재까지 ‘채권 500억-쌍용, 선경’이라는 문구가 겉면에 기재된 대봉투를 보관하고 있는데, 위 대봉투에는 ① ‘선경 300’이라는 문구가 겉면에 기재된 소봉투와 ② ‘쌍용 200’이라는 문구가 겉면에 기재된 소봉투가 들어 있었다. 위 ①항의 선경 300 소봉투에는 이 사건 약속어음이 들어 있었고, 위 ②항의 쌍용 200 소봉투에는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이 1992. 12.경 작성한 차용증(차용금액 10억 원짜리 차용증 20장, 차용금 총 200억 원)이 들어 있었다.

    (4) 한편, 김옥숙이 1998. 4.경 작성한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5) 김옥숙이 1999. 2.경 작성한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손길승은 1978년부터 1998년까지 선경그룹의 경영기획실장으로 근무하고, 최종현 사망 이후 2004년까지 SK그룹의 회장으로 그룹을 경영하였다.

    (중략)

    다) 피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약속어음의 발행 경위에 관한 검토

    (1) 대한민국이 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의 추징금 집행을 위하여 김석원을 상대로 제기한 추심소송에서, ① ‘노태우는 소외인을 통하여 김석원에게 1992. 12. 3. 및 같은 달 9. 각 100억 원씩 합계 200억 원을 교부하였고, 위 금원을 교부할 당시 김석원이 위 금원을 맡아서 적당히 관리하되 향후 노태우가 반환을 요구하는 시점에 은행금리 정도를 붙여 반환하기로 약정하였다’는 사실과 ② ‘위 200억 원이 노태우가 재임기간 중 조성한 비자금의 일부’라는 사실이 인정되었고, 이에 따라 원고인 대한민국이 승소하여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01. 4. 10. 선고 2000다49343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0. 6. 13. 선고 99나20102 판결). 그렇다면 쌍용 200 소봉투에 들어있던 10억 원짜리 차용증 20매(김석원이 1992. 12. 경 작성하여 노태우 측에 지급한 차용증 20매)는 김석원에 대한 위 추심소송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선경 300 소봉투에 들어 있던 이 사건 약속어음은 쌍용 200 소봉투에 들어 있는 위 차용증과 함께 ‘채권 500억-쌍용, 선경’이라고 기재된 대봉투에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중략>

    (5) 이처럼 ① ‘쌍용 200 소봉투’와 ‘선경 300 소봉투’가 함께 하나의 대봉투에 보관된 점, ② 김옥숙이 1990년대 후반에 작성한 두 개의 메모에 모두 ‘선경 300’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③노태우는 1990년대 다수의 기업가, 친인척, 금융기관 등에 비자금을 맡겼고, 그 중 상당 부분은 대한민국의 추심소송 등에 의하여 추심금으로 국가에 추징된 점, ④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그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최종현의 개인 자금으로 유입된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약속어음의 경우 (노태우가 김석원에게 200억 원을 맡기고 받은 차용증과 유사하게) 노태우가 1991년경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의 금전적인 지원을 한 다음에 받은 증빙의 의미라는 피고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피고의 주장 취지와 같이, 이 사건 약속어음은 노태우 측이 1991년경 최종현에게 앞서 본 바와 같이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한 다음 그 증빙의 의미로 지급받은 것이고, 노태우 측으로부터 최종현 측에게 유입된 자금은 위 (4)항 기재와 같은 최종현 명의 계좌의 입·출금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현이 기존에 보유하던 개인 자금과 혼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략>

    라) 원고가 주장하는 이 사건 약속어음의 발행 경위에 관한 검토

    (1) 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의 항소심에서는, 노태우가 최종현으로부터 30억 원을 수리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검사 작성의 최종현, 손길승에 대한 각 진술조서의 진술기재, 위 형사사건의 제1심 제1회 공판조서 중 피고인 노태우의 진술기재 등을 근거로 “최종현은 1988. 12. 말경 청와대에서 친·인척모임을 하면서 노태우와 사돈 간이므로 돈을 안 주어도 노태우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 이래 한번도 노태우에게 돈을 준 일이 없어 연말에 빈손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금 30억 원을 준비하여 청와대에 들어갔다. 친·인척끼리의 식사를 마치고 최종현은 노태우에게 잠깐 뵙자고 하여 옆방으로 가서 수표 1억 원 권 30매가 들어있는 봉투를 주려고 하니까 노태우가 사돈끼리 왜 이러시냐, ’’면서 거절하여 봉투를 탁자에 놓고 나왔으나 그로 인하여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노태우가 위 봉투를 가져가기는 하였다. 그 후 최종현은 사돈관계에 있는 노태우에게 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노태우에게 돈을 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관계가 인정되었다.

    (2) 또한 원고가 2024. 4. 11. 이 법원에 제출한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에는,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후에 당시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와 조성을 담당하고 있던 이현우 경호실장이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비서관이 불러서 찾아가면, 기업마다 통치자금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선경은 그 규모상 300억 원 정도는 분담해야 하니 준비해서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슬퍼런 정권이라 그룹에서도 이 돈을 비자금으로 준비해서 건네주기로 했다. 최종현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였을 때 노태우 대통령에게 위 통치자금을 준비해서 전달하겠다고 하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사돈한테 이런 돈을 어떻게 받겠느냐 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들고 간 30억 원짜리 수표를 집무실인지 응접실인지에 두고 나오셨다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3) 원고는 이에 관하여, “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의 항소심판결에서 인정된 바와 같이 1988. 12.경 30억 원 전달 이후 사돈관계에 있는 노태우에게 돈을 주지 않게 되었으나, 노태우의 비자금 실무를 담당했던 정권의 실세들이 선경그룹에 분담시킨 300억 원을 번번히 요구하였고, 정권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선경그룹에 할당된 돈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내자 선대회장은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필요한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고, 그 약속의 증표로써 차기 대통령선거 이틀 전인 1992. 12. 16.에 선경건설발행 50억 원의 약속어음 6장을 교부한 것이다.”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4) 그러나 ① 위 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에서 최종현은 스스로 ‘1988. 12. 말경 노태우와 사돈 간이므로 돈을 안주어도 노태우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노태우에게 30억 원을 주려고 하였는데, 노태우가 사돈끼리 왜 이러시냐면서 거절하여 봉투를 탁자에 놓고 나오자 노태우가 위 봉투를 가져가기는 하였고, 그 후 사돈관계에 있는 노태우에게 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노태우에게 돈을 주지 않게 되었다’고 진술하였고, 원고가 제출한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에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이후 최종현측이 노태우측으로부터 그 당시 선경그룹의 규모상 300억 원 정도의 통치자금 분담 요청을 받았고, 최종현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노태우에게 위 통치자금을 준비해서 전달하겠다고 하였는데, 노태우는 사돈한테 이런 돈을 어떻게 받겠느냐 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한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최종현이 1992년경에 여전히 사돈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노태우에게 갑자기 300억 원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면서 이 사건 약속어음까지 발행하여 주었다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 ② 노태우는 1988. 1.경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김석원에게 약 200억 원,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약 800억 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에게 약 400억 원,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에게 약 230억 원, 나라종금에 약 270억 원, 동생인 노재우에게 약 120억 원 등 다수의 기업가, 친인척, 금융기관 등에 이미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맡긴 상황이었으므로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로 사용할 수 있는 수천억 원의 자금이 이미 조성된 상황이었고,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 초기 최종현이 30억 원 상당의 수표가 들어있는 봉투를 미리 준비하여 이를 주려고 하자 노태우가 ‘사돈끼리 왜 이러시냐’라고 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여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사돈관계였던 최종현이 ‘퇴임 후 활동비로 3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하면서 그 약속의 의미로 이 사건 약속어음을 교부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을 쉽게 믿기는 어려운 점, ③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수사결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0억 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50억 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40억 원, 엘지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이 210억 원을 노태우에게 각각 건넨 것으로 드러났고, 당시 노태우 측은 그룹 총수들로부터 대체로 그룹 규모에 따라 비자금을 받았는데, 노태우 측이 선경그룹에 통치자금(비자금)으로 300억 원을 요구하였다거나 이에 따라 최종현이 300억 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하는 의미로 이 사건 약속어음을 발행·교부하였다는 원고의 주장 부분 및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의 해당 부분 기재 내용은 당시 선경그룹의 규모나 노태우와 최종현의 관계 등에 비추어 선뜻 믿기 어려운 점, 노태우는 그 당시 또 다른 사돈인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에게도 230억 원을 맡겼다는 사실관계가 형사재판에서 인정된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최종현이 노태우의 대통령 퇴임 이후 노태우에게 300억 원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의 의미로 이 사건 약속어음을 제공하였다는 원고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중략>

    6) 원고의 경영활동과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

    가) 원고는 이에 관하여, “대상회사(대한텔레콤→SK C&C→SK주식회사)는 ① 최종현 생전에 최종현의 전폭적인 기여로 기업가치가 125배 이상 급격히 증가하여 이후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②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한 이후에는 원고가 상속·승계한 경영권의 힘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한편, 국민경제 전체 및 SK그룹의 발전을 바탕으로 원고를 비롯한 수많은 임직원의 노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였다. ③ 그런데 원고의 경영활동을 통한 대상회사의 성장에 대한 기여는 대상회사로부터의 급여, 상여 등의 보수로 보상을 받았고, 원고의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는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와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나) 선경그룹이 1994. 1.경 한국이동통신(제1이동통신) 주식 23%를 인수하고, 1994. 7. 7.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인 1994. 11. 21.경 원고가 주당 400원에 매수한 대한텔레콤 주식이, 최종현의 사망 시점에 근접한 1998. 5. 13.경 주당 50,000원으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고, 갑 제178호증의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대한텔레콤 주식의 가치 상승은 SK텔레콤 등 SK그룹 내부거래에 기인한 것으로서, 당시 SK그룹 회장이었던 최종현의 경영상 판단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앞서 인정한 사실에다가 앞서 든 증거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경영활동이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에 기여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측면에서 최소한 최종현 사망 이후의 단계에서는 원고의 지위나 경영활동이 단순히 원고가 주장하는 ‘승계상속형’ 사업가가 아니라 원고가 주장하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1) (가) 원고는, 원고가 SK그룹의 경영자로서 SK그룹 내 회사의 수익과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고, 원고의 경영활동에 따른 이익을 얻는 데에 피고도 기여한 바 있음을 자인하고 있다. 다만 원고는, ‘승계상속형’ 사업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를 임의로 구분한 다음, 원고 자신은 승계상속형 사업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고의 SK그룹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 및 그에 대한 피고의 기여는 ‘원고의 보수 및 상여와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재산을 통한 이익’에만 국한되고,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증가’에는 원고의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 및 그에 대한 피고의 기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그러나 원고와 같이 지배주주(혹은 대주주)로서의 지위와 경영자로서의 지위를 겸유하는 사람은 (원고의 임의적인 구분에 따른 ‘승계상속형 사업가’ 또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경영자로서의 연봉, 주주로서의 배당이나 보유 주식의 가치 상승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신의 경영활동에 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원고가 주장하는 자수성가형 사업가 유형에 해당하는 미국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1997년부터 10년간 연봉 1달러를 고수하였고, 국내에서도 원고가 주장하는 승계상속형 사업가 유형에 해당하는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건희는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급여와 성과를 일절 받지 않았으며, 원고와 유사하게 승계상속형 사업가 유형에 속한다고 원고가 자인한 삼성그룹의 현재 총수인 이재용 역시 2017년 3월부터 현재까지 약 7년째 무보수 경영을 하고 있다. 위와 같이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 이재용 등이 연봉을 받지 않거나 1달러만 받은 것은, 이들의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가 0원 혹은 1달러에 상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로 배당금이나 소유 주식의 가치 상승을 통하여 자신의 경영활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원고의 주장과 같이 ‘원고의 SK그룹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와 이에 따른 이익창출에 대한 피고의 기여’가 인정되는 경우, 그로 인한 보상이 단지 ‘원고의 보수 및 상여와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재산을 통한 이익’에만 국한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에도 원고의 경영활동 및 이에 대한 피고의 기여가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봄이 타당하다.

    <중략>

    (6)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경제의 전반적 발전이나 SK C&C가 영위하던 이동통신 산업 및 IT 산업의 성장, 최종현이 생전 SK그룹의 발전 방향을 정보통신 분야로 정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고가 대한텔레콤 주식을 인수하고 대한텔레콤 이사로 취임한 다음, 대한텔레콤이 SK C&C를 거쳐 SK주식회사가 되는 과정에서 매출이나 자산총액의 성장이 국가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그 결과 원고가 보유하던 SK C&C 주식의 가치가 1994. 11. 20. 원고가 대한텔레콤 주식을 취득할 당시 1주당 8원에서 최종현이 사망한 1998년경 1주당 100원으로 상승한 다음, SK C&C 주식 상장시점인 2009. 11. 경에는 1주당 35,560원으로 상승하였고, 상장 이후 2014년 말경 기준 1주당 213,500원으로 급상승하였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바, 이러한 주식 가치의 상승폭 역시 대한민국 경제의 전반적 발전수준을 넉넉히 상회한다.

    (7) 원고는, ‘원고가 SK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수단이 당초 최종현으로부터 상속받은 상속주식에서 이 사건 SK주식으로 변환되었다’는 취지로도 주장하였다. 설령 원고의 위와 같은 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① 원고가 경영권의 수단으로서 최종현의 사망 당시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상속주식 가액이 합계 129,353,119,487원인 반면, 원고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 사건 SK주식의 가액이 2조 원을 상회하므로, 16배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점, ② 더욱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고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 C&C 주식 및 SK주식회사 주식 중 약 1,814,196,000,000원 상당에 해당하는 주식을 증여하거나 매도하였기 때문에 위 ①항의 이 사건 SK주식의 가액은 그 잔존 주식만의 가액에 해당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SK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SK텔레콤을 통한 SK하이닉스 인수 등 인수합병, SK바이오팜, SK바이오텍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 진출 등을 통해 이 사건 SK주식의 SK그룹 경영권 행사수단으로서의 가치 자체가 계속 상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2012년경 이루어진 SK하이닉스 주식 및 경영권 인수의 경우, SK텔레콤의 자금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SK하이닉스는 현재 SK텔레콤의 자회사 지위에 있는데(SK텔레콤은 선경그룹의 1994년 한국이동통신 주식 및 경영권 인수를 통하여 선경그룹에 편입되었다), 아래 7)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러한 원고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피고 측이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7) 이 사건 SK주식이 분할대상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구체적 판단

    앞서 인정한 사실에다가 앞서 든 증거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서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SK주식은 혼인기간 도중 원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지만, 이에 관하여 피고 및 피고의 가족들이 이 사건 SK주식의 형성이나 가치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하였다는 점이 인정되므로, 이는 실질적인 부부공동재산으로서 분할대상재산이 된다.

    <중략>

    (1) 노태우의 대통령 임기는 1988. 2.부터 1993. 2.까지였고, 원고와 피고는 노태우 임기 초기인 1988. 9. 13.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노태우 임기 직전인 1987년부터 노태우의 임기가 끝나기 직전인 1992년, 최종현이 사망한 1998년까지를 포함하여, SK그룹의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 자산총액, 계열회사 숫자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원고는 혼인 전 SK그룹이 이미 매출액 기준 재계 5위의 대기업이었다고 주장하나, 자산총액기준 재계 순위는 7위였던 것으로 판단).

    SK그룹은 노태우 대통령 임기 직전인 1987년 자산총액 2조 4,990억 원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종료 직전인 1992년 자산총액 8조 6,510억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하였고, 계열회사 숫자 역시 두 배 정도 증가하였다. 한편 SK그룹의 경우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1994년 이후 자산총액이 급증하여 최종현이 사망한 1998년 당시 SK그룹의 자산총액은 29조 2,670억 원으로 성장하였다. 위와 같은 SK그룹의 재계 순위, 자산총액, 계열회사 숫자의 변화를 다른 대규모 기업집단, 특히 SK그룹이 당시 속해 있던 5 내지 10위권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우와 비교하여 볼 때 SK그룹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1987년 당시 재계 순위 7위였던 선경그룹은 1990년 6위를 거쳐서 1991년 5위에 안착한 다음, 1998년까지 그 위치를 유지하면서 6위와의 격차를 계속 벌려 나갈 수 있었다.

    (2) 이 사건 약속 어음은 노태우가 1991년경 최종현에게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한 다음 그 증빙의 의미로 교부받은 것이고, 위와 같이 노태우 측으로부터 최종현 측에게 유입된 자금산과 마찬가지로 최종현의 의사에 따라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는 피고 측의 유형적 기여로 인정될 수 있다.

    (3)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및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과 관련한 피고 측의 무형적 기여에 관하여 본다. 앞서 본 사실 및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① 1990년대 초반의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및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최종현이 개인 명의로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면서 그 인수자금의 출처에 관하여 의혹이 제기되자 ‘최종현의 본래 개인 자금을 사용했다’고 대외적으로 해명하면서, 실제로는 최종현의 본래 개인 자금이 아닌 다른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업인으로서 그러한 사정이 과세관청, 수사기관 등 관계기관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확인되어 대외적으로 공개되었을 때의 파급력 내지 불이익을 고려하면 선뜻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최종현이 위와 같은 행위를 감행하였던 점, ② 이후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과정에 관한 의혹이 언론에서 제기되고, 나아가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동일한 의혹을 제기하며 이에 관한 세무조사나 자금추적조사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수차례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계기관을 통하여 이러한 세무조사나 자금추적조사 등이 이루어진 바 없고, 관계기관이 공적인 사실확인 절차에 착수한 적도 없어,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며, 결국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은 큰 성공을 거두어 SK그룹의 성장에 밑바탕이 된 점, ③ 최종현이 위와 같은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종현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고,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여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할 당시 대통령에서 퇴임한 직후였던 노태우와 사돈관계에 있으므로, 적어도 불이익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최종현의 주관적 인식과 ‘실제로 최종현의 인식대로 별다른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상황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각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종현은 노태우와의 사돈관계를 SK그룹을 경영하는 데 있어 일종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으로 인식한 다음, 그 당시 객관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것이임이 분명한 경영활동을 감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경영활동 및 성과를 이루어 냈으며, 피고의 부친인 노태우는 이러한 상황을 용인하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이러한 측면에서 피고 측이 SK그룹의 성장에 무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중략>

    ③ 결국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자금 중 상당 부분의 출처가 (가) 피고의 주장과 같이 노태우가 금전적으로 지원한 300억 원의 자금이었든, (나) 원고의 주장과 같이 선경그룹 계열사 자금이었든 간에,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선경그룹 측의 대외적인 해명과 달리) 최종현의 본래 개인 자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관계기관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이와 같은 사실이 언론 등에 공개되는 것 자체가 최종현 및 SK그룹의 경영에 엄청난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언론과 국회 등에서 이에 대한 의혹이 수차례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정에 대한 관계기관의 공식적인 사실확인 절차 등이 실질적으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최종현 개인 및 SK그룹은 이로 인한 불이익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태평양증권 인수자금의 출처에 대한 공식적인 사실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물론 제2이동통신 사업권 반납 이후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성공해, SK그룹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사) 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의 항소심에서는, 노태우가 최종현으로부터 30억 원을 수리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최종현은 1988. 12. 말경 청와대에서 친·인척모임을 하면서 노태우와 사돈 간이므로 돈을 안 주어도 노태우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노태우의 대통령 취임 이래 한번도 노태우에게 돈을 준 일이 없어 연말에 빈손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금 30억 원을 준비하여 청와대에 들어갔다. 친·인척끼리의 식사를 마치고 최종현은 노태우에게 잠깐 뵙자고 하여 옆방으로 가서 수표 1억 원 권 30매가 들어있는 봉투를 주려고 하니까, 노태우가 ‘사돈끼리 왜 이러시냐’면서 거절하여 봉투를 탁자에 놓고 나왔으나 그로 인하여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노태우가 위 봉투를 가져가기는 하였다. 그 후 최종현은 사돈관계에 있는 노태우에게 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노태우에게 돈을 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관계가 인정되었다.

    또한 원고가 제출한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에는,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와 조성을 담당하고 있던 이현우 경호실장이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비서관이 불러서 찾아가면, 기업마다 통치자금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선경은 그 규모상 300억 원 정도는 분담해야 하니 준비해서 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슬퍼런 정권이라 그룹에서도 이 돈을 비자금으로 준비해서 건네주기로 했다. 최종현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하였을 때 노태우 대통령에게 위 통치자금을 준비해서 전달하겠다고 하였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사돈한테 이런 돈을 어떻게 받겠느냐 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들고 간 30억 원짜리 수표를 집무실인지 응접실인지에 두고 나오셨다고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위와 같이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최종현 본인의 진술 및 원고가 제출한 2024. 3. 27.자 손길승 진술서의 기재에 의하더라도, 최종현은 ‘노태우와 사돈 간이므로 돈을 안주어도 노태우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였고, 노태우 역시 ‘사돈한테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면서 최종현에게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는 것인데, 위와 같은 최종현의 주관적 인식은 최소한 사돈관계에 있는 노태우가 최종현 내지 선경그룹에 불이익은 주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일반적인 기업인으로서는 선뜻 하기 어려운 기업활동[즉, 대외적으로 해명한 내용(본래 개인 자금 사용)과 다른 출처를 토대로 한 자금을 이용한 태평양증권 인수행위 등]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노태우의 뇌물 등 관련 형사사건에서,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는 1988. 3. 하순경 노태우 측에 ‘기업경영과 관련된 경제정책 등을 결정하고 금융·세제 등을 운용함에 있어서 삼성그룹을 다른 경쟁기업보다 우대를 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뇌물을 건넸고, 다수의 기업경영자들이 노태우측에 위와 같은 취지로 뇌물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는바, 당시 기업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 등 결정에 있어 경쟁기업보다 우대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선처’를 받는 것 역시 기업경영에 있어 중대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위와 같은 최종현의 행위에 관하여 수차례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계기관의 공식적인 사실확인 절차가 전혀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써, 최종현의 주관적 인식이 현실화된 것과 같은 상태가 달성되어 최종현 및 SK그룹은 객관적으로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아니할 수 있었고, 위와 같은 최종현의 행위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SK그룹은 한국이동통신의 인수에도 성공하여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종현은 노태우와 사돈관계에 있다는 점을 SK그룹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으로 인식한 다음 객관적으로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었고, 노태우는 이러한 상황을 용인하였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 한편, 피고는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과 관련하여, “원고는 SK그룹 경영기획실의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사업권 인수팀장으로서 대통령의 사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청와대에 수시로 출입하였고,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무렵인 1991년경 다른 응찰업체와 달리 청와대에서 직접 피고와 함께 무선이동통신 통화를 시연하였으며, 노태우는 위 시연을 보고 원고와 최종현의 이동통신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건의를 듣고 이동통신사업을 민간에 맡겨 원고를 비롯한 기업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하여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청와대에서의 시연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이전인 1990년 초에 한 번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도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고, 대통령에게 무선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생활 전반에 대한 식견을 넓혀주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원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1990년대 초 이동통신 사업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 청와대에서 무선통신에 관한 시연을 하였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 당시 기업인이 청와대에서 무선통신에 관한 시연을 하는 것이 불법적인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사위가 아닌 일반적인 기업인의 경우 청와대에서 위와 같은 시연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가지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전기통신사업법이 원고가 청와대에서 무선통신을 시연한 이후인 1991. 7. 10. 노태우 정부의 정부 제안으로 발의되어 여·야 합의를 거쳐 1991. 7. 23. 전부개정되었는데, 위 전기통신사업법이 4대 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제한하고 있었던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SK그룹이 결과적으로 이동통신 사업 부문에서 성공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고 집안과 피고 집안의 인척 관계가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 원고는 이 사건 제1심 이래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피고가 원고에 대한 수사를 청탁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전제로 피고가 원고에 대한 수사를 청탁하였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였는데,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의 피고 측의 영향력과 노태우의 대통령 재임 내지 그 직후의 피고 측의 영향력을 비교하면, 후자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였을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원고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피고 측의 영향력이 재계 순위 5위 이상에 위치하는 SK그룹의 회장을 구속시킬 정도였다는 것을 전제로 주장하면서도,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절 피고 측이 최종현의 선경그룹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실이 전혀 없고 오히려 다른 경쟁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받기만 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는바, 이러한 원고의 주장은 경험칙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차) 원고는 원고나 김준일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와 관련하여, “대한텔레콤 지분은 선경그룹 계열사인 유공과 선경건설만이 보유하고 있었고, 대한텔레콤은 현재가치는 없었지만, 미래가치는 매우 컸기 때문에, 원고나 김준일이 개인적으로 이를 매수하고 싶다고 해서 매수할 수 있는 주식이 전혀 아니었고, 오직 선대회장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이는 1994년경 누군가 대한텔레콤 매수대금인 2억 8,000만 원(원고)이나 1억 2,000만 원(김준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최종현의 아들이거나 최종현의 사위가 아닌 일반인의 경우에는, 위와 같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매수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원고나 김준일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에는 ‘최종현의 존재 및 그의 지시’가 ‘배경’이 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사한 관점에서 앞서 본 바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노태우의 사돈(최종현)이거나 사위(원고)라는 인척관계에 있지 않은 일반적인 기업인의 경우, 1991년 내지 1992년경 대외적으로 해명한 내용(본래 개인 자금 사용)과 다른,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을 이용해 태평양증권을 인수한 이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거나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최종현 및 SK그룹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한 후 SK그룹이 사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태우의 존재’ 및 ‘노태우의 용인’ 등이 ‘배경’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비록 피고 측, 특히 노태우가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및 SK그룹의 성장에 관하여 적극적인 행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종현과 원고가 노태우의 존재를 배경으로 객관적으로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한 기업활동을하는 등 노태우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노태우가 이러한 상황을 용인한 이상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인수,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및 SK그룹의 성장에 피고 측의 기여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4) SK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과 관련한 피고 측의 무형적 기여에 관하여 본다. 노태우의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9. 10. 미국 공식 방문 시 원고가 동행한 점, 1990. 5. 일본 공식 방문 시 원고가 동행하여 아키히토 일왕을 접견한 점, 1991. 6. 내지 7.경 미국, 캐나다 공식 방문 시 최종현이 동행하여 부시 미국 대통령 주재 만찬, 캐나다 총독 주재 공식 만찬, 퀘일 미국 부통령 초청 오찬 등의 자리에 함께한 점, 1991. 9. 유엔, 멕시코 공식 방문 시 최종현이 동행한 점, 1992. 1.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원고가 동행하여 미국 대통령과의 테니스 행사, 만찬 등의 자리에 함께한 점, 1992. 9. 중국 방문 시 최종현 회장과 원고가 동행하여 중국 자금성 시찰, 한중 경제인 오찬 등의 자리에 함께한 점, SK그룹은 1991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베이징 지사 설립 허가를 받은 점 등이 각 인정된다. 위와 같은 대통령의 해외순방 등에 기업인인 원고 또는 최종현이 동행한 것은 SK그룹의 해외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봄이 경험칙에 부합한다. 따라서 노태우는 SK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에 다소간의 무형적 기여를 하였다고 보인다.

    부부는 일반적으로 혼인에 의하여 다층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일방 배우자가 가족관계를 비롯한 일정한 영역에서 각자 일정한 역할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경우이로 인하여 타방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회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이 이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게 되므로 각자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대체재 내지 보완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피고가 혼인기간 동안 가사 및 양육을 담당하였고, 원고의 막내아들 최인근이 경형 당뇨 진단을 받은 후 최인근의 건강관리에 전념하였던 점, 원피고의 혼인기간 동안 피고가 위와 같이 가사 및 양육 등을 담당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원고의 경영활동이 이 사건 주식 가치 상승에 기여하였다는 점, 피고는 SK 원고 모친인 박계희의 사망 이후 박계희가 관장으로 재직하였던 그룹 산하의 SK 워커힐 미술관 관장이 된 다음, 워커힐 미술관의 후신인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으로 현재까지 재직 중인 점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피고가 가사노동 및 양육과 일정한 영역의 대외활동 등을 통해 가족관계를 비롯한 일정한 영역에서 원고의 대체재 내지 보완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고, 이로써 피고는 결과적으로 원고의 경영, 활동 및 이 사건 주식의 가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마) (1) 원고는 이 사건 주식의 가치 증가와 관련된 피고의 기여에 관하여, 원고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와 구별되는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 내지 경영권이 화체된 주식 등을 승계 받은 승계상속형 사업가로서 선대사업가인 최종현으로부터 물려받은 주식 등 기업자산의 경우, 상속재산 내지 특유재산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위와 같은 기업자산의 유지와 증식에 대하여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도를 인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취지로도 주장한다.

    (2) 원고가 년 매수한 대한텔레콤 주식이 이후 인수, 합병, 액면분할, 증여, 매각 등을 거치면서 현재 이 사건 주식이 되었는데, 원고가 대한텔레콤 주식 70만 주의 매수자금으로 지급한 자기앞수표 2억 8000만원이 최종현 명의 신한은행 계좌에서 인출된 ‘현금 및 대체’ 286,900,00원과 동일한 자금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고 오히려 1991년경 노태우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최종현에게 유입된 이후 위와 같은 자금이 최종현의 본래 개인 자금 및 원·피고 부부의 공동 자금과 혼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원고가 혼인기간 도중인 1994년 대한텔레콤 주식을 매수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주식의 출발점이 된 원고 명의의 대한텔레콤 주식의 취득자금은 원·피고의 실질적 부부공동재산을 그 출처로 보아야 하므로이 사건 주식은 원고의 실질적인 특유재산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3) 설령 이 사건 주식의 출발점이 된 원고 명의 대한텔레콤 주식 취득자금의 출처가 최종현이 보관 관리하던 자금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종현이 사망하기 전 SK그룹 성장에 관하여 피고 측, 특히 피고 부친인 노태우의 기여가 존재하였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고, 이 사건 SK 주식의 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피고 측의 기여가 존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원고는 이에 관하여, 최종현이 1998. 8. 26. 사망한 후 당시 그룹 경영에 참여 중이던 원고와 원고의 사촌 형제 등 인고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 원고, 최재원이 작성한 합의서를 근거로 최종현이 사망한 이후 원고가 최종현의 장남으로서 SK그룹의 경영권 내지 지배권을 승계하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1998.8.28자 합의서는 당시 가족 모두 원고를 그룹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를 공식 확인한 것이므로, 원고는 경영권 내지 경영권이 화체된 주식 등을 최종현으로부터 상속승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살피건대 1998. 8. 28. 합의서 제1항은 “1. 최태원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위임하여 대내외적으로 회사와 Family를 대표하게 한다”라고, 제2항은 Family 대표가 경영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최종현 회장의 주식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과 부채를 상속한다. 이 상속의 의미는 소유에 대한 상속이 아니며 그룹의 경영에 대한 대표권을 위임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① 위 합의서 제1항 및 제2 항 나아가 위 합의서의 나머지 항들의 문언만으로는 당시 최종현이 원고를 SK그룹의 후계자로 지정하였다거나 최종현 및 최종건의 가족 모두 원고를 그룹의 후계자로 당연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등의 원고의 주장 부분을 인정하기 부족한 점 [피고는 이에 대하여 오히려 ㉮ 위 합의서의 문언에 의하면, 원고에게 경영권을 위임하는 주체는 원고의 동생 최재원및 사촌 형제들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이고 최종현이 아니라는 점 ㉯최종현은 후계자 지정을 하지 않았고, 최종현 사후에 사촌들끼리 모여서 이를 결정하였다는 점 ㉰ 위 합의서는 ‘Family 대표가 최종현 회장의 주식을 포함한 일체의 재산과 부채를 상속한다’고 하면서 ‘상속의 의미는 소유에 대한 상속이 아니라 그룹의 경영에 대한 대표권을 위임하는 의미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고, 위임은 민법상 상호해지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원고의 대표로서의 지위 자체가 사촌들의 의사에 좌우되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 ㉱ 그 당시 원고는 주요 의사결정사항에 대한 사촌들과의 사전 협의 의무, 차기 Family 대표에 대한 우선권 등에 관한 사촌들 간의 합의를 통해서 대표자가 되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② 일반적으로 경영자이자 대주주가 사망한 이후 그가 소유한 주식이 그의 자녀에게 상속승계되더라도 경영권이 상속승계 되지 않을 수 있고, 대주주를 제외한 다수 주주들의 선택에 의하여 경영자의 지위가 얼마든지 변경, 교체될 수 있는 점 ③ 이 사건에서도 최종현이 사망한 이후 원고와 그 동생 및 사촌형제 등 5인이 앞서 본 바와 같은 자 1998. 8. 28. 합의서를 작성한 다음에 비로소 최종현의 법정상속인 중 1명인 원고가 1998. 9. 1. SK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였다는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5) 최종현의 사망 이후 원고가 구 유공의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SK그룹 전체를 경영하는 경영자가 된 이후 SK C&C나 SK그룹에서 했던 경영활동이 이 사건 주식의 가치 상승에 기여하였다는 점은 앞서 살펴보았음과 같다. 특히 원고가 SK그룹 경영자가 된 이후 그룹의 매출이나 자산총액의 성장이 대한민국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수준을 상회하고, 그룹이 하이닉스 인수 등 인수합병과 바이오팜, SK바이오텍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에 진출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최종현 사망 이전 까지 그룹의 성과를 근거로 원고를 원고가 임의로 구분한 승계상속형 사업가가로만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1998년 이후 원고의 경영활동은 원고가 주장하는 자수성가형 사업가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주식의 가치 증가에 원고의 경영활동 및 이에 대한 피고의 기여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하고, 최종현 사망 이후 이 사건 주식의 가치 증가분은 당연히 부부공동재산, SK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중략>

    바. 원고적극재산 순번 8번

    1) 관련법리

    가) 혼인 중에 쌍방의 협력에 의하여 이루한 부부의 실질적인 공동재산은 부동산은 물론 현금 및 예금자산 등도 포함하여 그 명의가 누구에게 있는지 그 관리를 누가 하고 있는지 불문하고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고 부부의 일방이 별거 후에 취득한 재산이라도 그것이 별거 전에 쌍방의 협력에 의하여 형성된 유형무형의 자원에 기한 것이라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며 분할대상이 되는 재산은 적극재산이거나 소극재산이거나 그 액수가 대략적으로나마 확정되어야 한다. 부부 중 일방 당사자가 부부공동재산인 부동산에서 임료 등을 독점적으로 취득한 경우 위 임료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특히 코스피 또는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에 관하여 금전배당이 이루어진 경우 배당기준일 이후에 배당락에 따라 시가지체가 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산분할의 대상에 포함된 주식에 관한 배당금은 당연히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나) 재판상 이혼의 경우 일방의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 등을 구하는 본소 제기는 물론, 이에 대한 상대방의 이혼 등의 반소 제기는 모두 이혼의 의사가 있으니 법원의 형성판결을 통해 혼인관계를 해소하고 혼인파탄의 책임 및 부부공동재산의 범위를 따 위자료 및 재산분할 내용을 정해 달라는 재판상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양의무자의 이혼 등 본소에 대하여 부양권리자가 이혼 등의 반소를 제기하였다는 사정은 이혼 의사가 합치되었다는 사정에 불과할 뿐 여전히 둘 사이에는 혼인파탄의 책임 및 부부공동재산의 범위에 관한 분쟁이 남아있어 혼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 따라서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공동재산인 주식에 관한 배당금을 부부 중 일방 당사자가 독점적으로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배당금은 혼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부부가 쌍방의 협력에 의하여 형성된 자원에 기해 취득한 재산에 해당하므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중략>

    사. 원고 적극재산 순번 9번 (예술품)에 관한 판단

    1) 원고의 주장 요지

    예술품은 원고가 모친 박계희로부터 상속받은 원고의 특유재산이고, 피고가 위 예술품의 유지관리나 가치감소 방지를 위해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분할대상 재산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2) 구체적 판단

    박계희의 사망 및 최종현의 사망 이후 원고가 위 예술품을 상속받은 사실에 관하여 원피고 모두 일치하여 진술하고 있다. <중략> 피고가 관장으로 재직하는 아트센터 나비에 위 예술품이 보관되어 위 예술품에 대한 상속세 납부가 상당한 기간 동안 유예된 점, 고가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 위 예술품이 아트센터 나비에 보관된 기간 동안 위 예술품의 유지 및 관리에 기여한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가 위 예술품 가치의 유지관리나 가치감소 방지에 기여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는 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중략>

    카. 원고 적극재산 순번 89 내지 91번(원고의 증여주식에 관한 판단)

    1)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1) 원고가 증여한 SK C&C 주식 및 SK주식회사 주식은 원고의 실질적 특유재산이므로 원고의 증여로 위하여 부부공동재산의 감소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나아가 원고의 증여는 부부공동재산의 부당한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

    (2) 특히 원고가 최신원, 최재원, 최창원 등 원고의 친인척 18명에게 SK주식회사 주식을 증여한 것은 1998. 8.경 최종현의 사망 당시 원고의 동생인 최재원과 창업주 최종건의 아들들인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의 양보와 협력을 토대로 원고가 그룹의 지배권을 원만하게 승계할 수 있었고, 이후 주식회사 SK주식회사 주식이 SK그룹의 지배주식이 되는 과정에서 최재원 등이 재산상 희생을 감수한 것 등에 대한 보상과 정산을 위하여 원고와 최재원, 최신원, 최창원 사이에 작성된 자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므로 위 증여는 부부공동재산의 부당한 유출로 볼 수 없다.

    나) 피고의 주장 요지

    (1) 원고가 부부공동재산인 SK C&C SK 주식 및 주식 수천억 원 상당을 무상으로 증여하였고 그 처분이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위와 같이 원고가 임의적으로 처분한 주식의 가액은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되어야 한다. 나아가 원고가 지적하는 2018. 11. 21.자 합의서의 경우, 이 사건 조정신청서가 제출된 이후에 작성된 것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문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원고의 위와 같은 증여행위가 원·피고의 부부공동재산의 부당한 유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2) 구체적 판단

    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의 부정행위가 시작된 시점이 늦어도 2009년 초경이고, 그 후 원고의 일방적인 가출로 위하여 원·피고가 별거하게 된 시점은 2011. 9. 11인데, 원고가 원고의 친척 18명에게 각 무상으로 증여한 점, 이 사건 주식이 부부공동재산에 해당한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중략>

    다) 위 인정사실에 더하여 ① 위와 같은 주식의 증여는 모두 원고가 자인하는 부정행위 시점(2009년 초경) 이후로서 원·피고가 별거하기 시작한 2011. 9. 11 후에 이루어졌고, 나아가 원고의 최종현학술원에 대한 증여 및 원고의 친인척에 대한 증여의 경우 원고가 이 사건 조정신청을 한 이후에 이루어진 점 ② 이와 같이 원·피고의 혼인생활에 관한 실질적인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 이루어진 위 각 증여의 경우, 원고의 통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증여주식의 가액이 합계 약 9,942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그 증여의 경위나 규모의 측면에서도 이를 원·피고의 일반적인 혼인공동생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③ 원고는 법정구속된 상태에서도 피고와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원에 이르기까지 제출된 모든 주장들과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원고가 구속된 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자 증여에 관하여 피고로부터 사전 동의 내지 양해를 받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이나 피고의 사후 동의 내지 양해가 있었다는 점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점 ④ 원고는 위 증여에 관하여 법원에 이르기까지 제출된 모든 주장들과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원고가 위 증여에 관하여 피고로부터 사전 동의 내지 양해를 받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이나 피고의 사후 동의 내지 양해가 있었다는 점 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점 ⑤ 원고는 주장에 따르더라도 위 각 주식의 증여는 비판 여론에 따른 기부이거나 선대회장의 인재 육성에 대한 뜻을 이어 나가고자 이루어졌다거나 친족들에 대한 보답과 보상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만으로 이를 원·피고의 부부공동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⑥ 원고가 최재원, 최신원, 최창원 등에게 주식회사 주식을 증여해 주어야 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는 점 <중략>

    라) 따라서 위 각 무상증여 주식은 원고가 피고의 동의 내지 양해 없이 부부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임의로 처분한 재산이고 그 가액 또한 위와 같이 산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원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여 분할대상에 포함함이 타당하다.

    타. 원고의 SK C&C 주식 매각대금 및 원고 소극재산 순번 1 내지 6번 (유가증권 담보 대출 및 신용대출에 관한)

    1) 당사자들의 주장 요지

    가) 원고의 주장 요지

    (1) 원고는 SK C&C 주식을 매각하였으나 위와 같이 처분한 주식은 원고의 실질적 특유재산에 해당하고, 원고는 경영상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김원홍을 통해 투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금 채무에 대한 상환 등을 주된 목적으로 위와 같이 주식을 처분한 것이므로 이를 부부공동재산의 부당한 유출로 볼 수 없다.

    (2) 한편 만약 이 사건 SK 주식이 부부공동재산으로 인정된다면, 원고가 경영상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김원홍을 통해 투자하는 과정에서 차입금 채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차입금 채무의 상환 등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부부공동재산에 속하는 이 사건 SK 주식 등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혹은 원고의 신용으로 금융회사 등 제 3자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은 결국 부부공동재산과 관련하여 발생한 채무라 할 것이므로 이러한 대출금 채무 등은 재산분할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나) 피고의 주장 요지

    (1) 피고는 위와 같은 원고의 주식 매각에 동의한 바 없고, 원고의 김원홍을 통한 투자행위는 그룹에 대한 경영활동과는 무관한 원고와 최재원, 김원홍 등 SK의 개인적인 범죄 행위의 일환이거나 최소한 비정상적인 투자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로 인하여 발생한 차입금 채무에 대한 상환 등을 주된 목적으로 이루어진 원고의 처분행위가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으며, 나아가 SK C&C 주식 매각에 따른 매각대금은 부부공동재산의 유지·증식이나 부부공동생활과는 무관하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위 매각대금은 현재 원고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원고의 적극재산에 포함되어야 한다.

    (2) 원고는 제1심에서부터 항소심의 심리 초반기까지 위 차용금 채무에 관하여 증여 상속 재산인 주식을 담보로 한 채무이며 일상가사 및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채무가 아니므로 재산분할시 청산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점을 명확히 밝혔고, 위 차용금 채무의 경우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이상 원고가 위 차용금 채무의 변제를 위해 이 사건 SK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차용금 채무가 부부공동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 대출금 채무는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2) 구체적 판단

    가) 재산분할 제도는 이혼 등의 경우에 부부가 혼인 중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는 민법이 혼인 중 부부의 어느 일방이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의 특유재산으로 하는 부부별산제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완하여 이혼을 할 때는 그 재산의 명의와 상관없이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기여한 정도 등 실질에 따라 각자의 몫을 분할하여 귀속시키고자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부부가 이혼을 할 때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적극재산이 있는 경우는 물론 부부 중 일방이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한 채무라도 그것이 공동재산의 형성에 수반하여 부담한 것이거나 부부 공동생활관계에서 필요한 비용 등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담한 것이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다) 한편 원고는 위와 같은 SK C&C 주식의 매도대금은 주로 김원홍을 통하여 이루어진 투자로 인하여 발생한 차입금 채무의 상환 목적으로 사용하였고, 당시 원고의 유가증권 담보대출금 채무나 신용대출금 채무의 대부분은 김원홍을 통해서 한 투자 관련 지출이거나 이를 변제하기 위해 부담한 채무임을 인정하고 있다.

    원고와 김희영은 늦어도 2009년 초경 무렵에는 부정행위를 시작하였으며 원고와 김희영 사이의 자녀인 최아시아케이가 출생한 다음 원피고가 2010. 7. 5.부터 별거한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는데, 원고의 SK C&C 주식 처분은 2011. 9. 11 이후에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원고는 김희영과 김원홍이 본래 알던 사이가 아니라 원고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바, 원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김희영을 알게 된 시점은 2006년경이고 김희영과 부정행위를 시작한 시점은 2009년 초경인데 김희영이 미국 뉴저지 법원에 2008. 6. 13. 전남편 상대로 제기한 다음 선고된 이혼판결에는 김희영의 직업이 김원홍이 운영 내지 투자했던 상하이 소재 회사의 직원으로 기재되어 있고, 원고도 김희영이 김원홍이 운영 내지 투자한 상하이 소재 회사의 직원으로 잠시 일한 것은 사실이라는 취지로 증언한 점, 증인신문 과정에서 원고는 김희영과 전남편의 이혼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느 취지로 주장하고 있으나 원고의 자필 편지에는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 했고 아이도 낳게 했어”,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한 것이고 시킨 것이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이 인정되고, 피고는 위와 같은 원고와 김원홍 김희영 등 사이의 특수관계 등을 지적하면서 원고가 주장하는 위 손해액 중 상당 부분이 해외에 은닉되어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기도 한다.

    <중략>

    2005년 당시 그룹의 대표자로서 각종 경제활동에 관하여 최소한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이 있었던 원고가 위와 같이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은 김원홍에게 일반적으로 투자위험도가 매우 높은 옵션상품에 관한 투자를 일임함으로써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스스로 초래하였다. 그리고 원고의 일부 투자금은 SK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횡령한 것이다.

    <중략>

    거. 원고 적극재산 순번 내지 번 원고가 부정행위 등과 관련하여 일방적으로 소비 처분한 금원 관련 에 관한 판단

    1) 피고의 주장 요지

    부정행위자인 원고가 부정행위 등과 관련하여 행한 일방적인 처분행위 등은 배우자인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를 부부공동재산의 유출로 보아야 하는데 그 가액을 산정할 수 있는 항목에 관하여는 해당 재산을 원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여 분할대상으로 삼고, 만일 그 가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를 분할비율의 산정에 반영하여야 한다.

    2) 구체적 판단

    가) 관련 법리

    헌법 제36조 제1 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 혼인의 순결과 가족의 건강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한 제헌 헌법 제20조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와 같이 국가가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등을 헌법적 차원에서 특별히 보호한다는 우리 헌법의 규정취지는 해당 문구에 관한 다소간의 변경이나 조문위치의 수정은 있었지만, 70여 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법체계와 재산분할청구 사건의 본질 및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부정행위자인 원고가 배우자인 피고의 동의 내지 양해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그 명의의 재산을 부정행위의 상대방인 김희영 및 그 가족에게 송금하거나 김희영과 함께 소비하는 등 일방적인 처분행위를 한 것은 최소한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 이러한 재산유출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재산의 유출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그 가액을 산정할 수 있는 항목에 관하여는 해당 재산을 원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여 분할대상으로 삼고 만일 그 가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를 분할비율의 산정에 반영하기로 한다.

    나)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지출한 기타 가계비, 최아시아케이 학비 및 김희영과의 임차비용 (원고 적극재산 순번 94, 95, 96)

    (1) 원고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아래 표와 같이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하게 기타 가계비로 12,562,000,000원, 김희영과 사이의 혼외자인 최아시아케이 학비로 534,000,000원,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한 임차비용으로 1,606,000,000원을 각 지출하였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다.

    (2) 따라서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한 비용은 피고의 동의 없이 부부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임의로 처용한 재산이고 그 가액 또한 위와 같이 산정할 수 있으므로 이를 원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여 분할대상에 포함한다. <중략>

    바) 주식회사 엔아이에이컴퍼니에 이체한 금원

    사) 한남동 주택 관련 비용

    (1) 피고의 주장 요지

    원고가 김희영과 함께 거주 중인 한남동 소재 주택의 공사 등에 소요된 비용 30,165,471,070원은 부부공동재산의 유출로 보아 분할대상에 포함하여야 한다

    (2) 구체적 판단

    한남동 소재 주택은 부부공동재산으로 분할대상에 포함되는 점, 한남동 소재 주택 관련 공사대금 등은 위 주택의 가치 형성 및 유지에 사용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금원은 분할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다만 김희영이 위 한남동 소재 주택에서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정은 분할비율에서 참작하기로 한다

    더. 재산분할의 비율과 방법

    1) 재산분할의 비율 : 원고 65%, 피고 35%

    가) 원고와 피고는 결혼식(1988.9.13.) 및 혼인신고 당시 별다른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원·피고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부부공동재산 중 대부분은 원고와 피고의 혼인생활 중에 형성하거나 취득한 재산이다.

    나) 원고와 피고의 혼인기간은 총 30년을 상회한다.

    다) (1)원고는 혼인기간 동안 SK그룹의 대표이사 회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상당한 보수를 받는 등 경제활동을 하였다. 원고와 피고 혼인 전 보유하고 있던 재산 규모가 크지 않았다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피고의 부부공동재산 중 상당 부분은 원고의 경영활동에 기인하여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원고는 선대회장인 최종현의 사망 이후 그룹을 이끌면서 를 중심으로 한 SK, SK C&C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SK텔레콤을 통한 하이닉스 인수 등 SK이노베이션, SK바이오팜을 중심으로 한 차 전지·바이오산업 등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출 등의 경영 성과를 이루었고 이를 통하여 그룹을 년 기준 재계순위 2위, 자산규모 약 327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원고와 피고가 상당한 규모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SK그룹을 이끌어 온 원고의 경영활동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2) 원·피고의 분할대상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 사건 SK주식의 경우에도 그룹의 자산총액·매출액 등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수준이나 관련 산업의 성장 수준을 상회하여 증대됨에 따른 영향을 받았고, 이와 같은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에는 그룹의 선대회장이자 원고의 부친인 최종현과 현 SK 회장인 원고의 경영활동을 통한 기여가 크게 작용하였다. 특히 원고가 최종현의 사망 이후 SK그룹의 경영권과 지배권을 승계하고 이후 SK 대표이사 회장, SK C&C의 이사 ,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 회장 등으로서 경영활동을 함에 따라 최종현의 사망 당시 주당 100원 상당이었던 대한텔레콤 주식의 가치가 이 사건 변론종결일 현재 주당 160,000원 주식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라) 그런데 원고 스스로도 위와 같이 원고가 그룹의 경영자로서 그룹 내 회사의 수익과 기업 가치를 높이고 원고의 경영활동에 따른 이익을 얻는 데에 피고가 기여한 바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마) 나아가 원고는 늦어도 년 2009초경부터 김희영과 부정한 관계를 시작하여 2010년 경 김희영과의 사이에서 최아시아케이를 낳고 피고와 별거하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김희영과 사실혼에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김희영과의 생활비 등 명목으로 상당한 금원을 소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원고는 김희영과 동거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 한남동 소재 주택별지분할, 한남동 주택에서 무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등 김희영에게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포함하여 이 사건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고는 장기간에 걸쳐 피고의 의사에 반하여 상당한 규모의 부부공동재산 감소 또는 유출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바) 또한 원고는 김원홍에게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SK 주식의 전신인 SK C&C 주식을 저축은행 등에 담보로 제공한 다음 대출을 받아 김원홍에 대한 투자금으로 제공하였는바, 앞서 살펴보았듯이 위와 같은 채무부담행위 및 처분행위 등은 원고와 김원홍의 개인적인 범죄 행위의 일환이거나 최소한 원고의 김원홍에 대한 비정상적인 투자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김원홍에 대한 투자금과 관련하여 약 8835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자인하고 있는 등 부부공동재산의 막대한 유출을 가져왔다. 그런데 원고가 김원홍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 등을 통하여 이와 같은 손해를 복구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 한편 원고는 김원홍에 대한 투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의 자금 450억 원을 횡령하였다가 이를 다시 계열사에 반환하였고 투자금 마련을 위한 차용금의 이자로서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기도 하였다.

    사) 피고는 혼인기간 동안 가사도우미 등의 도움을 받아 가사 및 자녀 명의 양육을 전담하면서 원고 모친 박계희의 사망 이후 SK그룹 산하의 워커힐 미술관 관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부부공동재산의 유지·증식에 기여하였다. 특히 피고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종의 대체재 내지 보완재의 역할을 하였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아)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SK 주식의 경우에도 원고가 피고와의 혼인기간 중에 취득한 재산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룹의 성장 과정 및 이에 따른 이 사건 SK주식의 형성과 그 가치 증가 등과 관련하여 1991 년경 피고 부친인 노태우 측으로부터 원고 부친인 최종현 측에게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이고 이는 최종현이 종래 보유하던 본래 개인 자금에 혼화되어 최종현의 경영활동을 뒷받침하는 유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최종현이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이나 SK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등 피고 측은 최종현이나 그룹에 대하여 일종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으로서의 역할을 함으로써 당시 SK그룹의 회장이던 최종현이 객관적으로 지극히 모험적이고 위험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등 무형적 기여를 하였다. 이외에도 노태우 등 피고 측이 SK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 등에 관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무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 사건 SK주식을 비롯하여 원고의 재산들은 모두 원·피고의 부부공동재산으로서 분할대상 재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원고는 이에 관하여 이 사건 SK 주식은 원고가 증여받은 주식이자 최종현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배권이 화체되어 있는 원고의 실질적 특유재산에 해당하는 바, 설령 이 사건 SK주식에 대한 피고 측의 기여를 인정하더라도 그 기는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이 사건 주식을 분할대상재산에 포함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전체 분할대상재산에 대하여 하나의 분할비율을 정하는 것은 형평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주식은 다른 공동재산과 구분하여 별도의 분할비율을 정하여야 하고 결국 이 SK 사건 주식에 대한 피고의 분할비율은 상징적인 수준인 미만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민법 제839조의 제2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재산분할비율은 개별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기여도 기타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전체로서의 형성된 재산에 대하여 상대방 배우자로부터 분할받을 수 있는 비율을 일컫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법원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분할대상 재산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분할비율을 달리 정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이 사건 SK주식은 원·피고의 혼인신고 시점으로부터 5년 이상 경과한 원고 명의로 취득한 대한텔레콤 주식으로부터 출발한 주식으로서 즉 원고가 혼인 이전에 취득한 재산이 아니다. 원·피고의 혼인기간이 30년을 넘고 그 주식의 취득 시점으로부터 현재까지도 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한 점,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SK주식의 형성·유지·가치 증가 등에 피고 측의 유형적·무형적 기여가 상당 부분 존재하는 점 등 이 사건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이 사건 주식을 다른 분할대상재산과 구분하여 분할비율을 달리 정하여야 하는 필요성 내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 한편 앞서 본 바와 같은 경위로 원고가 보유하고 있는 이 사건 SK주식의 경우 현 단계에서 원고의 SK그룹에 대한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재산분할 비율의 산정과정 및 재산분할 방법의 결정과정 등에서 참작하기로 한다.

    2) 재산분할의 방법

    3)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하여야 할 재산분할금 : 1,380,817,000,000원

    ① 원고와 피고의 순재산 중 분할비율에 따른 피고의 몫 합계 4,011,512,000,000×35% = 1,404,029,000,000원 (백만 원 미만은 버림)

    ② 피고의 순재산을 공제한 금액 = 1,404,029,000,000 - 23,212,000,000 = 1,380,817,000,000원

    러. 소결론

    따라서 원고는 피고에게 재산분할로 원 및 1,380,817,000,000이에 대하여 이 판결 확정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민법이 정한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의 반소 위자료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피고의 나머지 반소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하며 반소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여는 위와 같이 정하여야 할 것인 바 제1심판결 중 반소 위자료 및 재산분할 부분은 이와 결론을 일부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피고가 이 법원에서 확정한 청구를 포함하여 제2심판결 중 반소 위자료,재산분할 부분을 주문 제1항과 같이 변경하고 제1심판결의 나머지 부분은 이와 결론을 같이하여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 및 피고의 나머지 항소를 각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출처

    • 선데이 저널 ‘최태원-노소영’ 이혼재판 판결문 전문 ①

    • 선데이 저널 ‘최태원-노소영’ 이혼재판 판결문 전문 ②

    • 선데이 저널 ‘최태원-노소영’ 이혼재판 판결문 전문 ③

    • 선데이 저널 ‘최태원-노소영’ 이혼재판 판결문 전문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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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문][이 유]1. 본소 및 반소 각 이혼, 반소 위자료 청구에 대한 판단가. 인정사실나. 판단다. 소결론2. 반소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판단가. 재산형성의 경위 및 과정나. 재산분할의 기준시점다. 분할대상 재산 및 가액라. 원고 적극재산 순번 1번(SK주식회사 주식)에 관한 판단바. 원고적극재산 순번 8번사. 원고 적극재산 순번 9번 (예술품)에 관한 판단카. 원고 적극재산 순번 89 내지 91번(원고의 증여주식에 관한 판단)타. 원고의 SK C&C 주식 매각대금 및 원고 소극재산 순번 1 내지 6번 (유가증권 담보 대출 및 신용대출에 관한)거. 원고 적극재산 순번 내지 번 원고가 부정행위 등과 관련하여 일방적으로 소비 처분한 금원 관련 에 관한 판단더. 재산분할의 비율과 방법러. 소결론3.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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