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개요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소송 전후 또는 별거 과정에서 부부 일방이 주거지 내의 가전제품, 가구, 귀금속 등을 상대방 동의 없이 무단으로 반출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과거에는 부부간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하는 형법상의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인하여 형사상 유죄 판결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부부 사이의 재산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 개정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 하급심 판결을 통해 실무상 문제되는 사실관계와 처벌 수위를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2. 친족상도례 규정 개정
헌법재판소는 2024. 6. 27.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간의 재산 범죄에 대해 획일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했던 기존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며 즉시 적용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2024. 6. 27. 자 2020헌마468 전원합의체 결정). 헌법재판소는 "가해자가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처벌을 면제하는 것은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며, 가족 사회 내 취약한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할 우려가 있다"고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사법부의 결단에 발맞추어 2025. 12. 31. 형법 제328조가 개정·공포되었습니다. 개정 형법의 핵심은 과거의 '조건 없는 형 면제'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고, 배우자를 포함한 친족 간의 절도 범죄를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전면 전환한 것입니다. 특히 이번 개정 형법 부칙 제2조에 따르면, 해당 개정 규정은 2024. 6. 27.(헌법불합치 결정일) 이후 최초로 저지른 범죄부터 소급하여 적용됩니다.
따라서 이혼 소송 전후나 별거 기간 중 배우자가 독단적으로 가전이나 재산을 빼돌린 행위가 2024. 6. 27. 이후에 발생했다면, 피해 배우자의 고소가 있을 경우 형사 처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급심 판결 분석
하급심 판결을 분석해보면, 이혼 소송 전후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을 가져가는 행위에 대해 '절도죄'의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형 등 형사 처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법원이 밝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명의와 관계없는 공동소유 인정 : 피고인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혼수를 할부 구매했거나 본인 계좌로 대금을 변제했다 하더라도, 혼인 기간 중 부부가 공동생활을 위해 사용했다면 법률상 '부부의 공동소유 및 공동점유' 재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공유물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점유를 침해하여 가져간 이상 절도죄의 객체가 됩니다.
불법영득의사 및 고의 인정 : 상대방이 물품 반출에 대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이삿짐 업체를 부르는 등 임의로 취거한 경우, 미필적으로나마 타인의 소유·점유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아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합니다.
형사고소의 증대예상 : 친족상도례 규정이 개정됨에 따라 앞으로는 형사고소를 할 경우 실질적인 형사처벌(실무상 200-300만 원 수준)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혼소송에 병행된 절도죄 형사고소 사례가 증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4. 실제 하급심 판결
📌 [사례1]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25. 7. 17. 선고 2024고정40
범죄사실 : 피고인은 피해자와 2021. 2. 27. 결혼식을 올리고, 2021. 7. 15. 혼인신고를 한 후,2022. 12. 19. 협의이혼한 사이입니다. 피고인은 2022. 12. 28.경(협의이혼 직후) 피해자가 집을 비워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하여 피해자와 결혼 기간에 함께 사용하던 냉장고 1대, 김치냉장고 1대, 광파렌즈 믹서기 1대, 세탁기1대, 의류 건조기1대, 침대, 거실장 2개, 의자 6개, 테이블 2개, 안방 서랍장 2개, 안방 거울, 거실 액자 4개, 진주 목걸이, 진주 반지, 진주 귀걸이, 18K 금반지, 다이아 반지 3쌍, 18K 금팔찌 등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삿짐 업체를 불러 가져가는 방법으로 절취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피고인은 가전·가구들을 본인 신용카드로 할부 구매했으므로 본인 소유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혼인 생활 중 부부가 공동으로 사용하여 왔고 비용도 공동 부담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이는 '부부의 공동소유·점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피해자가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피고인의 요청을 명확히 거절했음에도 무단 반출한 점, 피해자가 이사 당일 밤 귀가하자마자 즉시 경찰에 신고한 점 등을 종합하여 절도죄를 인정하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 [사례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0. 8. 선고 2024고정593
범죄사실 : 피고인은 남편인 B와 이혼 소송 중에 있고, 피해자 C는 B와 동거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피고인은 2023. 6. 27.경 서울 관악구에 있는 B의 주거지에서 현관문 잠금장치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열쇠공을 불러 피해자 소유 도어락을 강제로 뜯어내는 방법으로 이를 손괴하고, B의 주거지 안방에서 당시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하여 피해자가 그곳 옷장 안 반지케이스에 보관하고 있던 다이아반지 1개와 그 옆 보관함에 보관하고 있던 현금 175만 원을 몰래 가지고 가 절취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피고인은 도어락을 부순 행위가 공동소유 주택에 들어가기 위함이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별거 중인 상태에서 허락 없이 해체한 점을 들어 재물손괴죄를 인정했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다이아반지를 본인 것으로, 현금을 남편 것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1년 넘게 별거 중인 상황에서 안방 장롱 깊숙이 있던 물건을 오인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남편 소유로 오인했다 하더라도 친족상도례(형법 제328조 제1항)는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적용이 중지되었으므로 절도죄 성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 [사례 3]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3. 4. 28. 선고 2022고정233
범죄 사실 : 피고인은 피해자와 부부관계로 지내다, 2021. 1월경 별거를 시작으로 2022. 1. 11. 이혼소송판결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피고인은 2022. 1. 5.(이혼 판결 확정전) 사이 피해자의 주거지에서 피해자와의 공동소유인 TV 1대, 세탁기 1대, 건조기 1대, 에어컨 2대, 침대, 책장 등 총 2,000만 원 상당의 가전제품 및 가구 등을 가져가 절취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피고인은 절도의 범의를 부인하였으나, 재판부는 범행 당시 피해품은 법률적으로 피고인의 단독 소유로 확정된 것은 아니어서 공유물이라고 판단, 공유물을 상대방의 승낙 없이 가져간 이상 범의를 인정하되, 범행 당시 이혼소송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었으므로 피고인과 피해자는 법률상 배우자 관계에 있었으므로 형을 면제하였습니다(현재는 개정 형법에 따라 절도죄 인정됨).
다만 주거침입은, (1)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는 이혼판결이 확정되지 않아 법률상 배우자 관계에 있었고, (2) 이 사건 아파트에 관한 권리의 귀속도 법률적으로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으며, (3) 피고인은 별거 후에도 종종 이 사건 아파트에 드나들기도 하였고, (4) 공소사실 당시 소지하고 있던 마스터키로 별다른 지장 없이 이 사건 아파트에 들어갔으며, (5) 가전제품 및 가구 등을 가지고 가기 위해 이 사건 아파트에 들어간 것인 점을 고려해, 피고인이 공동생활관계에서 이탈하거나 이 사건 아파트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관리를 상실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이 사건 아파트 출입을 금지할 법률적인 근거 기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되지도 않으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사례 4]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2022. 12. 20. 선고 2022고정121, 2022고정218
범죄 사실 : 피고인은 피해자 와 2019. 2.경 혼인하였다가 2021. 12. 14. 재판상 이혼이 확정된 사이입니다. 피고인은 2021. 12. 17.(이혼확정 직후) 피고인과 피해자가 함께 거주하였던 아파트에서, 피고인이 알고 있는 위 아파트의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 그 곳에 있던 피해자 소유의 TV, 냉장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압력밥솥, 서큘레이터 등 시가 합계 6,426,500원 상당의 가전제품을 가지고 가 절취하였고, 위 물건을 챙겨 나오면서 위 아파트 출입문(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변경한 후 피해자에게 알려주지 아니하여 출입문의 효용을 해하는 방법으로 재물을 손괴하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 피고인과 피해자는 2020. 8.경부터 위 아파트에서 모두 나가서 별거하였고, 피해자가 2020. 9. 14. 이혼의 소를 제기하여, 2021. 12. 14. 이혼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혼판결에서는 재산분할로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8,400만 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피해자에게 이 사건 아파트 중 1/2 지분에 관하여 이 판결 확정일자 재산분할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가전제품은 적어도 피해자가 피고인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점유하는 재물에 해당할 뿐, 피고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점유하는 재물이라고 볼 수 없고, 피고인도 이러한 사정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도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이 사건 가전제품들을 임의로 취거한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에게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였습니다.